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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캠퍼스식물] 선비들의 관상수..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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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관상수..배롱나무

 

  여름방학이 지나 개강을 하여 헐떡고개를 힘들게 오르고 나면 분홍색의 꽃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언제나 오르는 길이어서 쉽게 지나치기도 하지만 숨 한번 쉬고 하늘을 보면 이쁜 꽃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에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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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는 옷을 홀딱 벗은 듯이 매끈한 갈색을 드러내고 있고, 꽃은 분홍색으로 화사한 듯 하면서도 수줍은 듯이 피어있다. 이 나무의 이름은 배롱나무[Lagerstroemia indica L.]이다. 이 나무는 꽃이 피면 100일간 지속된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백일홍]이라고 하였던 이름이 [배기롱나무]로 바뀌어 불리고 또다시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충청도에서는 [간지럼나무]라도고 하는데 나무껍질을 긁으면 나뭇잎이 움직인다고 간지럼을 타는 나무라고 지어진 별명이다. 제주도에서도 [저금 타는 낭]이라고 하는데 “저금”과 “낭”이 제주도 방언으로 “간지럼”과 “나무”이다. 
  학명은 Lagerstroemia indica L.이며, Lagerstroemia는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Carolus Linnaeus가 그의 친구인 Magnus von Lagerström의 이름을 따라서 붙였다. 일본에서는 나무줄기가 미끄러워 원숭이미끄럼나무[さるスベリ猿滑]로 불린다고 한다. 중국어로는 [紫薇 ; zi wei] 라고 한다. 자주색 꽃이 피는 나무라는 뜻이다. 배롱나무가 많은 중서성을 자미성으로 이름을 바꿔 붙이기도 하였고, “紫”는 천자를 나타내는 말이라 하여 중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예전부터 배롱나무를 좋아하였다. 조선의 충신으로 유명한 사육신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은 배롱나무를 보며 한시를 지었다.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 어제 저녁 꽃 한 송이 지고
  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서로 일 백일을 바라보니
  對爾好銜杯(대이호함배) 내 네가 좋아 한 잔 하리라

 

  이 한시에서도 잘 나타나있듯이 배롱나무는 꽃 한송이가 백일을 피우지는 않는다. 한송이의 꽃은 1~2주정도 피고 꽃이 떨이지면, 다른 꽃송이가 또 피어서 그 아름다움을 유지해간다. 성삼문은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 시에 담았다고 한다. 배롱나무는 사대부집안에 많이 심었다. 오죽헌에 있는 배롱나무는 수령이 600년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며, 소나무, 매화와 함께 오죽헌의 수호목으로 보호 받고 있다. 배롱나무가 백일동안이나 변함없이 꽃을 피우는 열정과 강인한 생명력을 배우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배롱나무는 수술이 35~50개로 일일이 세어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 수술이 모두 수분을 할 수 있는 꽃가루를 만들지는 않는다. 꽃에 있는 수술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꽃잎과 가까이 있는 6개의 수술이 다른 수술에 비하여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6개의 수술은 푸르스름하며 비교적 큰 꽃가루를 만드는데, 이 꽃가루들은 다른 꽃의 암술로 이동하여 수정을 할 수 있다. 가운데 35~40개 정도의 다발로 있는 수술은 노란색의 꽃가루를 만들어 내는데 이 꽃가루는 수분이 되지 않는다. 그럼 왜 가운데에 있는 짧은 수술은 중요하지도 않는 꽃가루를 만들어 낼까? 해답은 벌에게 있다. 배롱나무는 꽃을 피우고 꽃가루를 이동할 때 벌의 도움을 받는데 벌은 꽃가루를 이동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벌의 먹이로 사용한다. 이렇게 벌이 먹기 위한 꽃가루는 벌이 좋아하는 노란색으로 양분을 적게 사용하여 만들고, 배롱나무가 진짜 수분(pollination)을 해야 하는 꽃가루는 푸르스름하여 벌이 선호하지 않도록 하고, 양분을 많이 사용하여 꽃가루를 만든다. 배롱나무는 벌에게 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만드는 것이다. 배롱나무의 지능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상황을 보면 벌보다 더 똑똑하지 않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럼 수많은 수술 중에 왜 6개만 생식능력이 있을까? 배롱나무는 꽃잎도 6장, 꽃받침도 6장이고, 암술은 1개지만, 과실의 수(심피)도 6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생식 가능한 수술 또한 6개이다. 6이란 수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배롱나무는 꽃을 백일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분과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효율적인 채내 에너지 사용과 꽃가루를 이동하기 위하여 꽃가루도 구분해서 만들어 내는 배롱나무는 과거 자신을 수양하던 선비들이 좋아할 만한 현명한 나무가 맞을 것 같다.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안범철

<이 글은 경희대학교 대학주보에 연재되었던 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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